
2025년 4월 16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은 대한민국 현대사 속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를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영화감독 이장호는 평생 진보적 시선을 견지해온 자신이 왜 이승만과 박정희를 오해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사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백을 카메라 앞에 내놓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께 사죄하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간 금기시되어 왔던 역사적 시선에 도전장을 던지며, 관객을 새로운 질문 앞에 세워줍니다. 단순한 미화도, 폄하도 아닌, 역사적 진실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이장호 감독의 용기 있는 시도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묵직한 파장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1. “나는 틀렸을 수도 있다” – 78세 감독의 고백
감독 이장호는 말합니다. “나는 그들을 독재자로만 알고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태어난 그는 스스로를 ‘해방둥이’라 부르며, 평생 진보적 시각에서 한국 사회를 비판해온 문화인이자 영화인이었습니다.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등 시대의 고통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그가, 은퇴 후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메라는 바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민주화의 관점에서 두 대통령을 ‘기회주의자’, ‘독재자’로만 보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정치적·경제적 배경과 글로벌 환경, 생존을 위한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감독의 고백은 단지 개인적 반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떤 이념의 틀 속에서 특정 인물을 바라보고, 또 왜곡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세대의 고백이자 문화적 반성문입니다.
2. 대통령의 두 얼굴 – 성과와 과오 사이에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과 반공 체제, 한미동맹 체결 등 기틀을 마련했지만, 4.19 혁명을 통해 퇴진한 인물입니다.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산업화를 추진했으며,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 경제를 부흥시킨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유신체제와 인권 탄압 등으로 역시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하보우만의 약속은 이처럼 이중적 평가를 받아온 두 인물의 삶을 단순히 영웅이나 악인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들이 했던 선택과 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이장호 감독은 영화 속에서 “우리가 그들을 오해한 건 아닌가?”, “과연 오늘의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사를 단죄의 도구로만 쓰는 것에 대한 경고를 보냅니다.
박정희에 대해 그는 말합니다. “인권의 관점에서 그를 비판하던 내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을 보며 새마을운동의 진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그는 “단독 정부 수립과 북진 통일의 실패만 기억했지, 건국의 근간을 세운 정치적 외교적 천재성은 무시해 왔다”고 고백합니다.
3. 다큐멘터리의 형식 – 인터뷰, 기록, 그리고 사유의 편집
영화는 인터뷰, 실제 역사 영상, 뉴스 아카이브, 통계 자료, 연설문, 그리고 감독의 내레이션이 혼합된 전통적 다큐 형식을 따르면서도, 관객이 감정적으로만 반응하지 않도록 차분하고 이성적인 편집 구조를 유지합니다.
총 87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1948년 건국부터 1979년 박정희 사망까지 대한민국의 핵심 현대사를 타임라인으로 구성합니다.
중간중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인터뷰를 배치해 다양한 시선을 전달하며, 특히 이장호 감독의 솔직한 독백은 단순한 역사 강의를 넘어 한 인간의 성장 기록처럼 보입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어느새 하나의 결론에 이르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유도됩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몰랐는가?”라는 자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돕니다.
4. ‘하보우만’의 의미 – 문화 전쟁과 신앙의 상징
제목 하보우만의 약속은 매우 독특합니다.
‘하보우만’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가사의 앞 글자를 따온 신조어로,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신앙, 민족주의가 함축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이장호 감독은 “나는 무신론자였지만, 이승만의 정치 철학과 건국 과정 속 ‘신앙의 힘’을 무시했던 게 부끄럽다”고 고백합니다. 영화는 단지 정치적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만든 정신적 기둥에 대한 감사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념, 그리고 그 신념을 잃어버렸던 세대에게 보내는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5. 논쟁을 감수한 개봉 – “이 영화는 불편해야 한다”
이장호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며 엄청난 내부 반대와 외부의 우려를 마주했다고 밝힙니다. 자신의 동료들, 영화계의 후배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진보 성향 지인들이 “왜 지금 이승만과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이에 “이 영화는 찬양도, 비판도 아니다. 단지 묻고 싶었다. 우리가 진실을 충분히 알고 비판했는지, 아니면 당대의 구호에 휩쓸렸는지를”이라고 답합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정치적이다’, ‘편향적이다’, ‘용기 있는 시도다’ 등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대한민국 문화계에서 보기 드문 역사 다큐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말합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단지 대한민국의 과거를, 미래를 위해 바라보고 싶었다.”
결론
하보우만의 약속은 단순한 역사 재조명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용기 있는 성찰이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망각해온 진실과 정신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문화적 기록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합니다.
“그들을 알아야 오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를 이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