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3. 27. 18:12

영화 끝, 새로운 시작 (재난, 모성, 인간성)

영화 끝 새로운 시작 포스터

 

영화 <끝, 새로운 시작>은 비현실적인 상상 속 재난이 아닌, 우리 곁에 실제로 다가올 수 있는 기후 재앙을 배경으로 한다. 끝없는 폭우로 인한 대홍수 속에서 한 여성이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생존을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린 이 작품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닌 인간성과 희망, 그리고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지만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 영화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현실로 다가온 재난, 극도로 현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끝, 새로운 시작>은 전기 차단, 빗줄기, 주택 침수 등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일상적인 재난에서 출발한다.

폭우가 몰아치고 구조 요청도 연결되지 않으며, 그 와중에 산모는 진통을 겪는다. 극적으로 구조되어 병원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지만, 그 순간부터 영화는 종말을 향한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영화의 재난은 전혀 SF적이지 않다.

외계 생물도, 좀비도, 행성 충돌도 없다.

단지 장기적인 폭우가 영국 대도시를 침수시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혼란과 공포, 국가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일상의 붕괴는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저지대가 물에 잠기고 교통과 통신이 마비된 상황 속에서 관객은 “정말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국가는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모자란 자원과 분열된 사회 속에서 구호의 손길은 점점 닿지 않는다.

여성은 아이를 품에 안고 시골로, 구호소로, 다시 폐허가 된 런던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녀의 노력은 대형 재난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정, 인간성과 모성의 재발견

여주인공은 그저 평범한 젊은 여성이다.

미용사로 일하며 아이를 처음 낳은 그녀는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세상과 단절된다.

그녀가 겪는 여정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 같다.

구호소에서 남편과 생이별하고, 약탈과 폭력의 위협 속에서 아이를 안고 끊임없이 피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특히 영화는 이 여성의 ‘모성’을 영웅적인 이미지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지쳐 쓰러지고,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불안과 공포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곁에 있기에 그녀는 다시 일어난다.

아이는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재앙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존재다. 그 관계는 단순한 모자지간을 넘어,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존 본능이자 인간성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동료 생존자와 함께 코뮌에 도착했을 때도 그녀는 안주하지 않는다.

고립된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그녀가 여전히 ‘세상’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다시 무너진 도시로 향하며, 아이와 함께 미래로 나아간다. 이 여정은 단지 생존을 위한 탈출이 아닌, 더 나은 삶을 향한 걸음이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사실적 연출, 작은 영화의 큰 메시지

<끝, 새로운 시작>은 대형 재난 영화처럼 화려한 CG나 시각적 볼거리를 자랑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배우들의 내면 연기와 현실적인 연출로 감정을 끌어올린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조디 코머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남편 역의 조엘 프라이, 동료 여성 역의 캐서린 워터스턴 역시 극의 현실감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한다.

특히 짧은 등장임에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는 마크 스트롱과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버배치는 원작의 팬으로서 제작에도 참여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으며, 그의 등장은 ‘희망’이라는 테마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든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회를 믿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며,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신념이야말로 진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결론: 절망 속에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끝, 새로운 시작>은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왔던 재난 영화의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위기의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인물을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이 처한 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희망은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남긴다.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가 잊고 있던 연결과 연대의 가치,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삶의 의지를 되새기게 만드는 이 작품은 소리 없이 큰 울림을 준다.

현실적인 재난 시나리오 속에서도 결국 인간은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는 영화. <끝, 새로운 시작>은 작은 영화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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